7월 1일부터 29일 동안 진행된 언론노조 KBS본부(KBS새노조)의 총파업이 '잠정중단'된 직후, 파업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주말 KBS1TV 9시뉴스(<뉴스9>)의 여성앵커인 김윤지 아나운서가 이 프로그램 앵커 자리에서 하차당했다. 파업 참여에 대한 KBS 사측, 즉 특보사장 김인규의 즉각적인 보복인 셈이다.

관련 보도를 취합해보면 KBS 사측은 애초 파업에 참여해 프로그램 진행을 중단한 아나운서는 복귀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세웠으나 KBS새노조의 항의로 김윤지 아나운서 등 뉴스프로그램 진행자에 대해서만 일단 상징적으로 프로그램에서 하차시키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
김윤지 아나운서를 주말 9시뉴스에서 하차시킨 것은 그 자체로 파업참여 KBS새노조 조합원들에 대한 상징적인 보복조치다. 여러 설명 필요없이, 방송사의 메인뉴스프로그램(MBC '뉴스데스크', KBS '뉴스9', SBS '8시뉴스') 앵커는 각 방송사의 간판이다. 각 방송사를 대표하는 얼굴이다.

KBS1TV '뉴스9' 주말앵커


그런데 KBS 사측은 파업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그 얼굴을 싹 교체했다. KBS새노조의 파업이 잠정중단된 단 하루만에 이뤄진 결정이다. KBS새노조는 파업을 잠정중단하면서 KBS 사측과 3개항에 걸친 합의서를 작성했다. 첫째가 '단협 체결을 위해 파업을 중단하고 업무에 복귀한다', 둘째가 '회사는 새노조와 단체협상을 재개하고 공방위 설치 등 단협 체결에 적극 노력한다', 셋째가 '새노조는 수신료 현실화를 지지하고 사회적 합의를 통해 이를 실현하는데 회사와 노력한다'이다.

KBS새노조가 회사와 합의한 이 내용을 두고 여러가지 논란이 있다. 29일이나 파업을 하면서 구체적인 성과 없이 추상적인 내용만 가지고 파업을 중단한 게 맞냐는 지적이 있고, 특히 세번째 수신료 문제와 관련해 많은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나 또한 이와 관련해 할 얘기가 많으나 이 글의 주제와는 약간 차원이 다른 문제니 일단 넘어가자. 어쨌거나 노사가 어떤 합의서를 쓰고 대화를 하고자 할 때는 무엇보다 서로에 대한 신뢰가 생명이다. 그런데 특보사장은 합의한지 하루만에 노조의 뒤통수를 쳤다. 대화를 할 의지가 있고 합의서의 약속을 이행할 의지가 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대로라면 KBS새노조가 파업을 중단하며 회사로부터 얻어내었다고 한 공방위 설치 등 단협 체결이 제대로 결실을 맺을 수 있을지 지극히 회의적이다.

김윤지 아나운서 등에 대한 보복은 파업참여 KBS새노조 조합원들에 대한 보복이며 '니들도 이렇게 된다'는 식의 시범케이스로서의 위협이자 엄포와 마찬가지이고 아울러서 이처럼 파업 이후 노사 협상에 사측이 어떻게 나설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이다.

KBS파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아나운서들(사진 둘째줄 왼쪽부터 홍소연, 김윤지, 정세진)-출처:KBS본부


따라서 KBS새노조가 이들 아나운서에 대한 보복과 관련해 강력대응하는 것은 당연하다. KBS새노조는 사측의 보복이 자행된 직후 발표한 성명에서 사측의 보복에 대해 "이른바 ‘KBS직원 版 블랙리스트’를 만든 것"이라며 "사측이 잉크도 채 마르지 않은 노사합의서의 정신을 정면으로 위반한 치졸한 보복행위로 규정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또한 "우리의 파업은 결코 끝난 것이 아니다"며 "KBS본부 일천여 조합원들은 언제든지 다시 전면적인 투쟁에 나설 결의가 돼 있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그리고 29일 동안의 파업에 아직 지쳐있을테지만 3일에는 보복인사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강력대응하기로 했다. 한겨레 기사를 보면 이번 보복인사로 말미암아 다시 한 번 KBS 노사 간에 '전면전'이 벌어질 수도 있는 것 같다.

KBS새노조가 이렇게 전면에 나서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KBS새노조 외에도 이 상황에서 시끄럽게 나서야 할 곳이 한군데 더 있다. 그런데 조용하기만 하다. KBS 사측의 파업에 대한 보복이 현재 아나운서들에게 집중되고 있는데, 이 아나운서들을 지켜야 할 곳이 조용하기만 한 것이다. 아나운서연합회 이야기다.

그동안 존재가 있는지조차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아나운서연합회는 최근 들어 포털사이트 핫이슈에 오를 정도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바로 강용석 의원 때문이었다. 강용석이 아나운서를 지망한다는 대학생에게 "다 줄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래도 아나운서를 할 수 있겠느냐"는 말을 한 사실이 공개가 된 이후 아나운서연합회는 강용석의 의원직 사퇴를 요구하며 성명을 내고, 국회를 방문해 국회의 엄정한 처리를 요구하는 한편 검찰에 직접 고소하기도 했다.

강용석 발언과 관련해 고소장을 접수한 성세정 아나운서연합회 회장(사진 가운데)-출처:경향신문


아나운서연합회가 강용석의 발언에 대해 강력 대응하는 것은 당연하나, 개인적으로는 아나운서연합회가 어떻게 나올까가 궁금했던 것도 사실이다. 왜냐하면 지금 아나운서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는 인물이 한나라당 국회의원과 각을 세우는 활동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아나운서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는 인물은 성세정 아나운서로 KBS아나운서 협회장직도 맡고 있다.

이 성세정이란 사람은 지금 KBS '6시 내고향' 진행자이기도 한데, 성세정은 김인규 사장이 취임한 이후 자신이 진행하는 프로그램 외에 KBS 뉴스에도 자주 얼굴을 내밀었다. 특보사장 김인규가 KBS의 공정성은 난도질하면서 이런저런 전시성 행사를 벌이며 자기 얼굴을 TV 화면에 자주 노출시켰는데, 성세정은 김인규가 무슨 행사에서 화면에 얼굴을 내밀 때 사장과의 친분을 내세우기 위함인지 그도 옆에서 은근슬쩍 자신의 얼굴을 노출시켰다. KBS구노조 위원장인 강동구가 김인규와 함께 떡을 잘랐다면(관련글: http://www.mediawho.net/526), 성세정은 김인규와 함께 연탄을 나른 인물쯤은 되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5일 KBS뉴스의 한장면. 김인규 사장이 연탄 리어커를 끌고 그 뒤에 성세정 아나운서연합회장이 리어커를 밀고 있다

올해 2월 13일 KBS 뉴스의 한장면. 설연휴 귀성객에게 CD를 배포한 KBS 사측의 행사에 성세정이 참석했다. 운전자에게 CD를 나눠주는 사람은 김영해 KBS부사장


뿐만 아니라 KBS새노조가 "MB정권과 김인규 특보사장의 코드에 맞는 인물을 프로그램의 전면에 내세우고 대신 그 반대의 사람들을 철저히 솎아내기 위한 살생부 작성기구가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 이른바 'MC선정위원회'와 관련해서도 성세정의 역할이 거론된 적이 있다.

지난 4월 김인규가 국회에 출석한 적이 있는데, 당시 민주당 의원들은 김미화씨와 관련해 블랙리스트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이중 서갑원 의원이 김인규에게 "MC선정위가 있나"라고 묻자, 김인규는 "있다"며 "MC선정위원회가 바람직하지 않느냐는 건 아나운서협회에서 여러번 얘기한 것"이라고 답한 적이 있다. 이 아나운서협회는 곧 성세정이 회장으로 있는 KBS 아나운서협회를 이야기하는데, 정리하자면 성세정을 중심으로 한 KBS아나운서협회가 'MC선정위원회가 바람직하다'며 이를 도입할 것을 요구했다는 이야기다.

자, MB의 대선특보 출신인 김인규와 가깝다는 것은 한나라당과 가까운 사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니 성세정이 회장으로 있는 아나운서연합회가 과연 강용석의 발언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까가 개인적으로 궁금했던 것이다. 하지만 아나운서연합회는 나의 우려 혹은 궁금증을 씻고 강용석의 발언에 대해 대응했다. 당연한 일이다. '과연 아나운서연합회가 어떻게 나올까' 의문을 가지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일 정도로 당연한 일이다.

아나운서연합회가 발간하는 '아나운서저널' 봄호에 KBS의 헌혈캠페인 화보기사가 게재됐는데,첫장을 김인규KBS사장의 헌혈모습이 큼지막하게 장식했다. 오른쪽 아래에 성세정의 모습이 보인다.


아나운서를 비하하는 강용석의 발언에 아나운서연합회가 대응하는 것이 당연한만큼 아나운서를 본보기삼아 보복하는 KBS의 조치에 대해 아나운서연합회가 대응하는 것 또한 너무나 당연하다.

파업에 참여했다고 그동안 진행하던 프로그램에서 아나운서를 하차시키는 것 자체가 어처구니없는 행태이고, 회사에 밉보였다고 뉴스 진행자를 끌어내리는 것은 아나운서를 그저 말 잘듣는 앵무새 정도로 여긴다는 것으로 아나운서라면 당연히 강하게 반발해야 한다. 그런데 아직 아나운서연합회가 김윤지 아나운서 등이 당한 보복에 대해 어떤 입장을 내놓았다는 건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볼 수 있으리라 기대할 수가 없다.

KBS새노조는 MC선정위원회와 관련해 "MC선정에 있어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인사들을 내세우고 눈 밖에 난 사람들은 ‘위원회의 적법한 결정’이라는 외피를 씌워 배제하려는 것"이라며 "실제 새 노조 소속 아나운서들이 1차 배제 대상이라는 얘기가 사내에 파다하다"고 주장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성세정이 회장으로 있는 KBS아나운서협회가 새노조 소속 아나운서들을 프로그램 진행에서 배제시키기 위해 MC선정위를 회사에 요구했다는 의미가 되고, 지금 벌어지고 있는 김윤지, 이재후 아나운서 등 새노조 소속 아나운서들에 대한 보복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판단할 수 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소속된 아나운서들의 부당한 대우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해야 할 KBS아나운서협회와 아나운서연합회가 여태 조용한 걸 보니 나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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