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의 수신료 인상 관련 비공개 최고위원회 도청 논란이 더욱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언론을 통해 민주당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를 종합하자면 이를 도청한 '수신료 문제의 이해당사자'는 KBS 측 인물로 좁혀지는 것 같다.

아직 뚜렷한 증거는 나오지 않은 것 같지만, 정황증거나 목격담 등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는 모양이다.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가자, 처음에는 '아는 바 없어 할 얘기도 없다'는 식으로 이도저도 아닌 대응으로 어물쩍 넘어가려 했던 KBS도 바짝 긴장 모드에 들어가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급기야 KBS는 6월 30일 '정치권 논란에 대한 입장'이란 보도자료를 배포해 반박에 나섰다.

KBS는 "KBS에 대한 근거 없는 의혹 제기가 증폭되고 이로 인해 회사의 명예가 크게 훼손되는 묵과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판단에 따라 필요한 대응에 나설 수밖에 없게 됐다"며 "회사와 기자의 명예를 훼손하는 주장과 행위에 대해 즉각 법적 대응에 착수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했다.

꽤나 날을 세워 겁을 주고 있지만 KBS의 '입장'에서 정작 확인하고 싶은 '입장'은 확인할 수 없다.

KBS는 문제가 되고 있는 '도청' 문제와 관련해 "민주당이 주장하는 식의 이른바 도청 행위를 한 적은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둔다"고 했는데, 이 문장이 참으로 난해하고 애매모호하기 짝이 없다.

언뜻 보면 '우리는 도청하지 않았다'는 말처럼 보이지만 앞에 붙은 단서가 예사롭지 않다. KBS는 "민주당이 주장하는 식의 이른바 도청 행위"라고 표현하며 "한 적은 없다"고 했다.

'도청'이면 도청이고 '도청'이 아니면 아닌 것이지, "민주당이 주장하는 식의 이른바 도청 행위"는 도대체 뭐란 말일까?

KBS의 입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KBS는 '민주당이 주장하는 식의 이른바 도청 행위'는 하지 않았지만 '다른 식의 도청행위는 했다'고 봐도 무방한 것 아닐까?

KBS의 이 표현 안에는 이리저리 빠져나가기 위한 KBS 나름의 복잡한 계산이 담겨 있는 것 같다. 가령 민주당은 도청이 '회의실에 마이크를 대는 식' 또는 '무선마이크를 놓고 나가는 식'으로 이뤄졌다고 파악하고 있는 것 같은데, KBS는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마치 '도청을 하지 않았다'는 걸로 주장하는 게 아닌가 싶은 것이다.

KBS 이강덕 정치부장은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당 대표실이 평소에는 비어 있고, (비교적) 오픈된 공간이기 때문에 비공개회의라고 해도…현장에서 얼마든지 적극적으로 취재하는 방법이 있지 않느냐. 귀대는 것도 있고. 기자로서 할 수 있는 온갖 적극적 방법 동원해 취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의 일방적인 KBS 수신료 인상안 날치기 처리 원천무효를 주장하는 민주당 문방위원들이 21일 국회 문방위 법안심사소위의 미디어렙 법 처리를 저지하기 위해 회의실에 대기하고 있다. 민주당 문방위 간사를 맡고 있는 김재윤 의원이 노영민 원내수석부대표와 얘기하는 내용을 전종철 KBS 국회출입기자(맨 오른쪽)가 옆에서 듣고 있다.(자막 및 사진 출처-오마이뉴스)


김인규 사장이 KBS 이사들에게 말했다는 이른바 '벽치기'와 일맥상통하는 내용이다. 그러니깐 KBS는 취재를 위해 '온갖 적극적인 방법을 동원'해 민주당 최고위원회의 회의 내용을 파악해놓았지만 그것이 '도청은 아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자, 여기까지는 이해된다. 그럴 수 있다고 본다. 김인규가 이야기한 '벽치기'도 김인규 말처럼 '전통적인 취재기법'이라고 볼 수 있다. 어쨌든 기자들은 특종을 낚으려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취재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 과정에서 '벽치기'를 할 수도 있고, 고 장자연씨의 유서를 찾아냈듯이 쓰레기통을 뒤질 수도 있다.

그런데!!

더 중요하게 KBS의 입장을 듣고 싶은 내용이 있다.

한나라당 한선교 의원이 읽은 녹취록은 출처가 어디냐는 것이다. 이왕 입장을 밝힐거면 '무관하다'고 명백히 밝히면 될 것을 KBS는 이 부분에 대해 아무런 입장을 내지 않았다. 이 부분 만큼은 말장난을 부릴만큼의 여유와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 걸까?

그리고 무엇보다 따지고 싶은 것은 KBS가 이런 입장을 내고 사장과 정치부장이 언론에 '취재'니 뭐니 이야기할만큼 정말 떳떳하냐는 것이다.

벽치기도 좋고, '온갖 적극적 방법'이 동원되는 것도 좋다. 그런데, 과연 그런 것들이 정말 뉴스를 위한 '취재'를 하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기자'라는 지위를 이용한 사적인 혹은 한 회사의 이익을 위한 정보수집을 위한 것인지 수신료 정국에서 KBS가 보인 모습을 보면 따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당연히 나는 후자 쪽이라고 판단한다. KBS는 이번 입장 발표에서 "KBS는 수신료 문제의 당사자로서 이와 관련된 국회 논의를 적극적으로 파악"해왔다고 했다. 물론 KBS라는 방송사는 자신들의 명운이 걸린 수신료 문제와 관련해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것을 파악하는 데 '취재'를 명분으로 '기자'들을 활용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며 언론윤리와 직결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벽치기라도 해서 특종을 한다면 유능한 기자겠지만, 벽치기를 해서 내부 정보보고용으로 사용하거나 심지어 정략적으로 활용했다면 이는 기자로서의 자격 상실이며, 회사 차원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면 관련된 라인의 간부와 경영진 모두가 책임져야 할 문제라고 본다.

아무래도 KBS가 아직 여유로운가보다. 어차피 수신료 인상이 적어도 6월 국회에서 무산된만큼 어쩌면 '잘못될거야!'라면서 지금까지보다 훨씬 막나가려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KBS는 말장난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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