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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자(8월 25일) 조선일보에 아주 희한한 칼럼이 하나 실렸다.
조선일보에 실리는 칼럼이 항상 그러니 딱히 '희한하다'고까지 할 건 없지만 어쨌든 일반적인 기준에서 보자면 그렇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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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한한 칼럼'은 역시나 '희한한 칼럼니스트' 김대중 전 조선일보 주필이 썼다. 칼럼 제목은 <금메달과 평준화>.

칼럼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번 올림픽을 보니, 우리나라 사람들 금메달에 열광하더라, 금메달이 뭐냐, 세계 최고 아니냐, 세계 최고는 뭐냐, 경쟁을 통해 얻어지는 것 아니냐,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런 경쟁의 산물인 금메달에는 열광하면서 교육에 있어서는 경쟁을 나쁜 것이라 여기며 평준화를 주장한다. 이런 위선적인 행태가 어디있냐', 뭐 이런 거다.

'올림픽 금메달'과 '교육 평준화'를 연결시키는 논리 자체가 어이 없지만, 그것을 강조하기 위해 우리나라 사람들을 '금메달에 환장하는 사람'처럼 묘사한 것 또한 어처구니없다.

김 씨는 칼럼에서 "금메달을 좋아하지 않는 나라나 국민이 없겠지만 유독 우리는 금메달에 올인하며 금메달만이 메달인 양 대접하는 경향이 강하다"며 "한 스포츠 관계자는 텔레비전에 나와 '은메달을 딴 선수가 마치 죄인인 양 고개 숙이며 눈물을 글썽이는 나라는 아마도 우리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다"라고 썼다.

물론, 우리나라 사람들이 금메달에 열광한다. 자기 분야에서 '최고의 일가'를 이룬 사람이 각본 없는 드라마 끝에 얻은 값진 성과에 대해 환호하고 열광한다. 근데 이게 '유독'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일까?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이 올림픽에서 오직 '금메달에만 올인한다'는 것은 또 사실일까? 내가 다른 나라의 사례를 제대로 알지 못해, 외국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조선일보,  그리고 조선일보의 김대중 씨는 국민을 향해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단언컨대, '금메달에 대한 올인', '금메달이 아니면 메달 취급도 안하는 경향'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보편적 경향이라기보다는 미디어들이 조장해낸 현상이다. 금메달을 따면 다음날 아침 신문에 대문짝하게 싣고 '인간승리'니 '드라마'니 줄줄이 기사를 써 대서특필하는 게 바로 조선일보 같은 신문들이요, 금메달이 걸린 경기면 타방송사와 경쟁하면서 중복편성을 해 전파낭비를 자초하는 게 바로 우리나라 방송들이 아닌가.

어차피 조선일보 출신의 김대중 씨가 지적한 것이니, 조선일보만 살펴보자.

조선일보는, 올림픽 개막 이후 거의 매일같이 1면에서 금메달 획득 소식을 전했다. 우리 선수가 금메달을 따지 않았으면, 외국 선수의 금메달 소식을 전했다. 그들의 주된 관심은 오직 '금메달'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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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기사는 모두 조선일보 1면에 실린 기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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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 또한  마찬가지)

금메달이 없던 날에는 이렇게 1면에 사진도 없이 자그만하게 실었던 게 조선일보다. 그리고 금메달을 따지 못했던 날에는 "안타까웠던 하루"라는 제목까지 붙였던 게 바로 조선일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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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도 1면에 실린 기사)


이런 조선일보가 오히려 국민들더러 금메달에 올인하고 금메달 아니면 취급도 하지 않는 것처럼 몰아가며 어이없게도 평준화를 들먹이며 '이중성' 운운하다니 참으로 역겹기까지 하다. "끝까지 평준화를 신봉할 것이면 금메달에 목숨 걸듯이 매달리는 세상을 만들지 말았어야 한다"고 하는 김 씨의 주장을 보며, 어떻게 금메달을 가지고 이런 상상을 할 수 있는지 신기하기조차 하다.

대다수 국민들은 금메달에도 열광하지만, 역도의 이배영 선수를 보면서 감동한다. 금메달을 따진 못했지만 동메달을 따낸 여자핸드볼 선수들에게 기꺼이 큰 박수를 보낸다. 신수지 선수를 보며 그 아름다운 연기에 열광한다. 금메달을 따지 못했다고 지면에서 차별하는 조선일보 따위와는 격이 다르다.

그리고, 조선일보와 김대중 씨는 제발 착각하지 말라. 아니 알면서도 호도하지 말라.

'평준화'는 '능력의 균일화'가 결코 아니다. '기회의 평등'이다. 재능이 있음에도 돈이 없어서, 부모를 잘못 만나서, 시골에서 살아서 재능을 썩이지 않을 수 있는 그런 교육을 하자는 거다. 육상선수를 육성하면서 똑같이 100M를 10초에 뛰게 만드는 게 아니다. 누구는 우레탄이 깔린 트랙에서 연습하고 누구는 모래 깔린 운동장에서 연습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다같이 좋은 환경에서 연습할 수 있도록 하자는 거다.

제발, 억지 좀 부리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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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메달에 환장한 김대중 그 김대중이 이 김대중이냐 저 김대중이냐

    2008/09/02 16:23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BlogIcon 맥시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 나물에 그 밥.
    놀랍지도 않네요. 타이틀만 보고 바로 알았습니다.
    '이건 조중동이구나!'

    제 살 제가 깎아먹고 제 얼굴에 침 뱉는다더니......

    2008/08/25 19:36
  2. BlogIcon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목보고 김대중 전대통령으로 알았습니다;;

    2008/08/25 20:04
  3. BlogIcon Drifter  수정/삭제  댓글쓰기

    화장실 똥휴지만도 못한 종이조각들이.... 으휴...

    2008/08/25 20:07
  4. BlogIcon A2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신들이 한 일은 기억하지 못하는건 여전하네요.

    2008/08/25 20:20
  5. 성격 좋으시네요...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걸 다 읽으셨군여..
    저는...큰 글씨만 보구 개뼉다구 같은 소리하는구나 싶어...덮어버렸는데...-,.-

    억지논리, 과장, 왜곡, 자극적인 어휘선택....보다보면, 혈압올라서...
    구독 포기한지 오래...

    2008/08/25 20:58
  6. BlogIcon wAck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건뭐...

    2008/08/25 21:04
  7. BlogIcon 생활의바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선일보도 마찬가지고, 다른 기성 언론 모두 별반 태도가 다른 것 같지 않습니다.
    금메달에 목매는 소리 할 때마다
    조중동과 공중파, 그리고 각종 광고들 모두 볼때마다 맘이 불편합니다.

    2008/08/25 21:09
  8. BlogIcon 늑대소년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는 말과 하는 행동이 왜 저리 다른지 모르겠습니다. 차라리 어느 한쪽으로든 말과 행동이 같다면 뭐라하지도 않겠다만....조선일보가 정보의 신속성이나 다양성에서는 확실히 인정은 하지만 원칙과 기준은 없어보입니다. 김대중주필도 글을 쓰기전에 자신이 일하는 신문사의 신문은 보기나 하는건지...

    2008/08/25 23:13
  9. dfcep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중동의 시각만 그런가요? 대부분의 신문이 다 그렇던데요

    2008/08/26 00:43
  10. BlogIcon 샴페인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분석글 잘 읽었습니다. 국민들은 점점 수준이 높아져 가는데
    일부 미디어 특히 조선은 정말.. 휴..

    2008/08/26 02:01

현재는 '고문'이라는 직책을 맡고 계시는 조선일보의 김대중 전 주필.
지금은 그냥 '언론인'이라고만 되어 있는 역시나 조선일보의 류근일 전 주필.
정말 그 이름만으로도 빛이 번쩍번쩍 나는 분들이시죠~~ --;

헌데, 김대중 전 주필도 '고문'을 맡은 뒤로 예전처럼 활발하게 글을 쓰지 않는 것 같고, 류근일 전 주필도 그 이름을 접하기가 대단히 뜸한 것 같습디다.

아쉬운 참에 드디어 그분들의 뒤를 이을만한 분을 발견했습니다.
이번에는 조선일보가 아니고 동아일보입니다.

이명박 대통령과 가장 먼저 인터뷰를 하고, 인수위와 정부 내의 각종 은밀한 정보를 빼내 특종을 하는 등 이명박 정부 하에서 가장 영향력 막강한 매체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동아일보니만큼 당연한 거겠죠. ^^

그 이름은 바로, 배·인·준!!
동아일보의 배인준 논설주간입니다.
'거성'보다는 감히 '거필(巨筆) 배인준'이라 불러드릴까 합니다.

그 분의 그야말로 '명문' '명칼럼' 몇 개를 소개해드리지요~

[배인준 칼럼]치명적 대통령病 (2007년 11월 6일)

출판사 지인이 보내온 진융(金庸)의 무협소설 의천도룡기(倚天屠龍記)를 잠시 읽었다. ‘당국자미, 방관자청(當局者迷, 傍觀者淸)’이란 말이 거기 나온다. 바둑을 두는 사람은 미혹에 빠지나, 곁에서 보는 사람은 맑은 정신으로 대세를 읽는다는 뜻이다. 5년 전 대선의 승자와 패자, 노무현 대통령과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함께 생각났다.

노 대통령이 독선(獨善) 망집(妄執)을 억누르고, 국내외 비판 의견을 반쯤만 새겼더라도 본인과 친노(親盧)그룹의 처지가 지금보단 나을 것이다. 반노(反盧) 이노(異盧·노무현과 다름) 극노(克盧·노무현식 정치 깨기)가 이번 대선의 큰 흐름이 돼 버린 현실 앞에서 후회해 봤자 늦었다.

이 전 총재는 세 번째 출마 여부를 장고(長考) 중이다. 60% 안팎의 민심(民心)이 반대하고, 거의 모든 신문이 부당성을 지적하는데도 끝내 출마한다면 이 또한 ‘미혹에 빠진 것’이라 해야겠다.

대통령병(病)만 고치면 이 전 총재의 입지가 노 대통령보다 훨씬 좋다. 국민 50% 이상의 지지를 받고 있는 한나라당의 창업자급 원로(元老)로서 원칙과 상식 수준의 훈수나 덕담만 가끔 해도 존경 받을 위치다.
極右장사, 승산 없다

10년 전엔 정권 재창출을, 5년 전엔 정권 탈환을 장담하며 한나라당 후보 자리를 수임(受任)했지만 절호의 기회를 살리는 데 연거푸 실패한 그다. 그럼에도 많은 국민은 ‘이회창이 두 번 죄지었다’는 말을 아끼고, 잇단 패배를 위로하며 멋진 원로 역할을 기대했다. 그는 대통령이 되진 못했지만, 경제나 대북(對北) 문제에서 역사적 빚이 무거운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꿀릴 것도 없다.

한나라당의 올해 경선은 과거와 비교해도, 여권(與圈) 경선과 비교해도 훌륭한 선거였지만 이 전 총재는 치하(致賀)에 인색하고 오히려 이 후보를 타박했다. 이 전 총재가 이미 2년간 대선 3수(修)를 치밀하게 준비해 왔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가 많은 것을 상상하게 한다.

그렇다면 이 전 총재는 왜 경선에 떳떳하게 나서지 않았을까. 1년 이상의 여론 흐름에 답이 숨어 있다고 추측된다. 한마디로 경선에서 이길 가능성이 없었던 거다. 그런데도 이제 와서 핑계를 지어내 탈당 후 출마를 강행한다면 4등도 못된 등외자(等外者)의 경선 불복이다. 경선에 뛰어들었다가 승산이 없자 중도 탈당해 잡탕 신당의 경선에 도전했던 손학규 씨보다 더 기회주의적이다.

이 전 총재 측은 이명박 후보가 네거티브 공세를 못 견딜 거라고 걱정한다. ‘핑계가 좋아 사돈네 집에 간다’(속내는 다르면서 겉으로만 그럴듯한 핑계를 댄다)는 우리 속담이 있고, ‘늑대가 양을 잡아먹을 핑계는 언제나 있다’는 서양 속담도 있다.

요즘도 각종 여론조사의 이 후보 지지율은 55% 안팎이다. 10년 전 이인제 씨가 신한국당(한나라당 전신)을 탈당할 때의 이회창 후보 지지율은 7∼11%였다. 이처럼 낮은 지지율에 허덕이던 이회창 후보가 이인제 씨의 독자 출마를 “민주주의 원칙을 부정하는 배반(背反)”이라고 규정했다. 이 전 총재가 과반(過半)의 지지를 받고 있는 후보를 부정하고 독자 출마한다면 민주주의에 대한 배반이자 자신에 대한 배반이다. 설혹 후보를 바꾸지 않을 수 없는 ‘이변’이 법정시한인 12월 1일 이전에 생기더라도 대안은 박근혜 전 대표다.

이명박 후보와 한나라당의 대북관, 안보관이 애매하다는 것도 그저 핑계다. 맥아더 동상을 쓰러뜨리려는 극좌(極左)가 더 문제이지만, 극우(極右) 장사로 안보가 지켜지는 것도 아니다. 한나라당이 국가 정체성을 부정한 적도 없다. 이 전 총재가 ‘직업적 보수’ 극우 운동권의 궤변을 빌려 출마하더라도 중원 장악에는 필패(必敗)할 수밖에 없다.

이회창 씨, 더 추락할 건가

무엇보다도 이번 대선의 시대정신은 경제다. 이 전 총재에게 영향을 미치는 한 극우 인사는 “이번 선거의 의미는 좌파세력을 교체해 대한민국을 정상화하는 것”이라며 “대선 후보의 경제 제일주의는 타락”이라고 주장했다. 자유시장경제를 제대로 복원하는 것이야말로 좌파세력 교체의 지름길임을 모르는 것 같아 답답하다.

노병(老兵)은 죽지 않는다. 사라져 갈 뿐이다. 그러나 망가져 가는 노병을 지켜보기는 안타깝다. 이 전 총재가 끝내 출마해, 앞의 두 번에 이어 세 번째 ‘죄’를 짓는 모습은 정말 보고 싶지 않다.


이 칼럼은, 지난 대선 당시 이회창 씨의 출마가 기정사실화될 무렵 나온 것입니다.
이회창 씨의 출마를 기필코 막아야겠다는 '결기'가 느껴지십니까? ^^

[배인준 칼럼]한 시간의 발품, 그리고 5년 (2007년 12월 4일)

‘이달 중순엔 맑은 날이 많겠고, 기온은 평년(평균 영하 5∼9도)과 비슷하겠으며, 강수량은 평년(3∼20mm)보다 적겠음.’ 기상청이 어제 발표한 예보가 19일에도 맞는다면 대선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투표보다는 놀러나 가자는 사람이 많을지, 날도 괜찮은데 집에만 있느니 잠깐 찍고 오자는 사람이 많을지….

‘하늘’도 투표율의 변수가 되겠지만 선거 종반의 후보 구도와 판세가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보수(保守)는 완전 분열된 가운데 여권(與圈)이 후보 단일화를 이뤄 내면, 범여(汎與) 선호층이 심기일전해 대역전(大逆轉)을 꿈꾸며 투표소로 몰려갈지 모른다. 5년 전의 추억도 생생하다. 노무현 정몽준 단일화가 깨지면서 오전 투표까지 이회창 후보가 앞서 나가자, 노 후보 지지층은 휴대전화와 인터넷을 통해 서로에게 비상(非常)을 걸어 투표율을 끌어올렸다. 반면 이 후보 지지층은 오후에 많이 놀러 가 버렸다. 집념과 방심이 승패를 뒤집어 버렸다.

이번에는 이명박 이회창의 격돌이 여권에 어부지리(漁夫之利)를 안길 것이라는 위기감 때문에 범우파(汎右派) 유권자들이 바빠질지 모른다. 10여 년간 선거 여론조사를 해 온 리서치회사 A 부장은 이번 대선 투표율이 2002년보다 떨어지지는 않을 거라고 내다본다. “호남은 낮아지겠지만 영남은 높아질 것이다. 연령층별 투표 성향도 중요한데 5년 전 27.8%이던 20대 유권자가 이번엔 21%로 줄었다. 이번엔 고연령층 투표율이 그렇게 낮지 않을 것이다.”

超人(초인)대통령은 없다

A 씨는 많은 데이터를 근거로 이런 관측을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번에도 공상(空想)투표만 하고, 실제로 투표장에는 가지 않는 사람이 많지 않겠느냐”는 추측 또한 강하다. 어느 후보나 티가 많아 찍을 마음이 안 생긴다거나, 선거가 싱겁게 끝날 것 같다는 이유들이 열거된다. 우파 사이에선 “보수층은 좌파만큼 악착같지 못하다”는 말이, 좌파 사이에선 “이번 선거는 백약(百藥)이 무효”라는 말이 흘러나오기도 한다.

1987년 직선제 대선이 부활된 뒤 투표율은 89.2%(1987년 노태우 당선) 81.9%(1992년 김영삼 당선) 80.7%(1997년 김대중 당선) 70.8%(2002년 노무현 당선)로 계속 낮아졌다. 이번에는 60%대가 될 거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물론 유권자의 절반이 기권하더라도 새 대통령은 탄생한다. 하지만 국민이 나라의 진짜 주인이 되려면 행동으로 주권(主權)을 행사해야 한다. 기권도 행동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선택으로부터의 도피이거나 방관이다. 유권자들이 ‘선택의 고통’을 감당해야 새 대통령의 잘잘못에 대해서도 당당하게 민의(民意)를 결집해 보여 줄 수 있다. 세계 민주주의 역사는 참정권(정치참여권, 투표권) 확대를 위한 투쟁의 역사였음을 상기할 것도 없이, 민주주의는 선거 참여를 통해 완성된다.

국민은 어차피 새 대통령과 함께 5년을 동고동락(同苦同樂)할 수밖에 없다. 국민 팔자가 대통령 한 사람의 수완에 달린 것은 아니지만 최선(最善)이 못 되면 차선(次善)을, 그도 못 되면 차악(次惡)이라도 잘 골라야 국민 성공의 가능성도, 가족 행복의 가능성도 조금은 높아진다.

결함 없는 후보는 없다. 후보들은 국민에게 하늘의 별이라도 따 줄 듯이 하지만 ‘초인(超人) 대통령’을 기대한다면 실망만 커질 것이다. 민생의 모든 문제에 개입해 전천후 해결사가 되겠다는 후보보다 ‘정부가 하지 않아야 될 일’을 자제(自制)할 것 같은 후보가 시장(市場)을 통해 경제를 살릴 가능성이 높다.

그나마 ‘굿뉴스’ 더 만들 후보는?

대다수 국민에게 이번 대선의 시대정신은 ‘경제 재도약’이다. 앞으로 5년, 10년 안에 성장의 파이를 최대한 키워 놓지 못하면 당대(當代)는 물론이고 고령화가 급속해질 10년 뒤, 20년 뒤의 국민 삶은 더 힘겨워질 것이다. 이는 모든 세대의 발등에 떨어질 문제다.

또 하나의 시대정신이 있다. 국민통합이다. 지난 5년간 정권이 부채질한 국론 분열과 사회 갈등을 방치하거나 악화시키고는 국민 잠재력과 경쟁력을 결집할 수 없다. 그러면 경제 재도약도 멀어진다. 어느 후보가 가장 통합 지향적인 자질을 지녔는지 관찰해 볼 필요가 있다.

3767만 유권자 모두가 한 시간의 발품을 팔아 자신들의 내일을 바꿀 선택에 나설 일이다. 보름 남았다.


이 글은 또 어떻습니까?
독자들에게 시간을 조금만 내어 투표하러 가자~고 호소하고 있는 것 같습니까?
근데 그 호소 속에 뭔가 속내가 느껴지지 않습니까?

[배인준 칼럼]유권자發 정치 개혁의 날 (2007년 12월 18일)

미국 대통령 후보 존 F 케네디와 리처드 닉슨이 1960년 TV토론에서 격돌했다. 유머작가 레니 브루스는 시청자 반응을 간명하게 묘사했다. “케네디 지지자들의 논평은 늘 ‘닉슨을 골로 보내 버렸어’라는 식이다. 닉슨 지지자들이 있는 곳에 가면 ‘묵사발이 된 케네디 꼴이 어때요?’라고 말한다.”

17대 대선 D-1이다. 각 후보가 3700만 유권자의 진짜 ‘한 방’을 기다릴 차례다.

이명박 후보가 1 대 5로 싸웠다고 개탄할 일은 아니다. 만약 정동영, 이회창, 문국현, 권영길, 이인제 후보 중에 부동(不動)의 1위가 있었다면 그가 네거티브 난타(亂打)의 표적이 됐을 게 뻔하다. 누구에게나 아킬레스건(腱)이 있고, 해묵은 재료도 먼지를 털면 근사한 새 타깃이 되는 법이다.

이번이 역대 어느 대선보다도 추악한 선거라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만인의 축제(祝祭) 같은 화기애애한 페어플레이 대선이 언제 있기라도 했던가. 기억이 무디어져, 지금 상황이 가장 생생할 뿐이다. 1992년 김영삼, 김대중, 정주영 후보가 붙었을 때 양김의 ‘민주화 동지 관계’는 제각각 내동댕이쳐진 헌신짝 꼴이 됐고, 초원복집 사건 같은 ‘음모 대 음모’가 판을 쳤다. 1997년 김대중, 이회창, 이인제 3파전 때는 지역감정과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이라는 해괴한 좌우(左右) 짝짓기, 그리고 경선 불복이 판을 갈랐다. 5년 전의 노무현, 이회창 결전은 이른바 ‘3대 의혹’ 흑색선전으로 얼룩졌다.

이번 대선, 긍정적 변화 많았다

이번 대선은 좌파정권의 속살이 거의 드러난 탓에 일찌감치 우열이 확연했다. 그 점이 오히려 여권(與圈)을 악에 받치게 했다. 10년 집권이 끝나 가는 상황의 권력 금단(禁斷)현상과 집단적 공포심이 사투(死鬪) 에너지로 변환됐다. 그 집요한 파괴적 공세는 대선이 끝난 뒤에도 멈추지 않을 공산이다.

이회창 후보는 과거 두 번이 너무 억울했다는 피해자 의식과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라는 절박한 심정에 쫓기고 있을 것이다. 지난날 국민이 알고 있었거나 믿고 싶었던 이회창의 모습을 스스로 벗어 던진 것은 한 인간의 한계라 할 수도 있다.

이번 대선에선 ‘정치 개혁’ 구호가 실종됐다. 이명박 후보가 가끔 “여의도식 정치를 뜯어고쳐야 한다”고 말한 것이 고작으로, 정치 개혁 공약이 없는 대선은 처음이다. 그러나 정치 공급자들이 뭐라 하건 말건 정치 수요자, 즉 국민이 선거 과정에서 이미 적지 않은 정치 개혁을 이뤄 냈다. 네거티브 공세보다는 미래가치 창출 능력을 보여 달라는, 뺄셈의 정치가 아니라 덧셈의 정치를 하라는 도도한 민심(民心)의 표출이야말로 정치 개혁의 뚜렷한 신호탄이다.

이해찬 전 국무총리는 DJ와 노무현 대통령의 공동 후원을 받았고 한명숙, 유시민 씨와 다단계 예선 이벤트까지 연출했지만 신당 경선에서 3위로 패퇴했다. 정치 공급자의 독선(獨善)에 대한 정치 수요자의 분명한 거부 또한 ‘손에 잡히는’ 정치 개혁이다. 손학규 씨가 여권 경선에서 탈락하고, 5년 전 이회창 후보를 지지했던 유권자 중 다수가 한나라당 후보 지지로 돌아선 것은 정당 민주주의가 뿌리내릴 수 있다는 희망의 증거다.

정동영 후보가 “대통령님, 제가 ‘목포의 눈물’을 불렀습니다”라며 DJ에게 매달려도 호남 표심이 예전 같지 않고, 영남도 ‘우리가 남이가’ 같은 옛 가락만으로는 통하지 않을 정도가 됐다. DJ가 혼신의 힘을 다해 몰아붙였지만 정동영, 문국현, 이인제 후보 간의 ‘묻지 마 짝짓기’는 물거품이 됐다.

세상은 결국 투표자가 바꾼다

진정 생산적인 정치인, 국민에게 함께 뛰자며 앞장서 뛰는 정치인이 승리하는 선거가 반복된다면 이보다 확실한 정치 개혁은 없을 것이다. 국민의 이익, 국가의 이익이 어디 있는지 똑바로 읽고 가장 현실적인 수단으로 국익을 창출하려는 정치인과 정당이 국민의 선택을 계속 받는다면 그 자체가 가장 성공적인 정치 개혁이다.

내일의 대선은 유권자발(發) 정치 개혁의 큰 일보(一步)가 돼야 한다. 내년 4월 9일의 18대 총선이 또 한 번의 기회다. 더디고 지루하지만 정치를 바꾸는 것은 결국 투표자들의 한 방, 한 방, 또 한 방이다. 이 한 방들이 국민의 삶을 바꾸고, 자식들을 세계에 자랑스러운 한국인으로 키울 수 있는 에너지다.


이 칼럼은 또 어떠신지요?
2002년 조선일보의 그 유명한 사설 '정몽준, 노무현 버렸다'보다는 못하지만, 유권자들에 뭘 요구하는지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까? '네거티브'를 극복한 국민발 정치개혁, 즉 BBK에 흔들리지 말고 표로써 한 방 날려줘라~

사실 이때까지는 그러려니 했습니다. 근데,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뒤, 배인준 주간께서 더욱 빛을 발하시더군요.

[배인준 칼럼]‘참 쉬운 회견’ 2008년 1월 16일

50분간 TV를 시청하기가 우선 편했다. 약간 느린 저음에 실려 나오는 말들은 쉬웠다. 표현에 꼬인 구석이 없고 표정에 여유가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어제 기자회견 분위기가 5년 뒤 퇴임 무렵까지 이어진다면 그는 성공한 대통령이 될 것이다. 동시에 이명박을 상머슴으로 뽑은 국민도 성공한 국민이 된다.

추상명사보다 動詞가 많았다

당선인은 자신이 할 일에 대해 기자회견문 끝부분에서 정답을 말했다.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언제나 초심으로 국민을 섬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대부분의 연설은 “감사합니다”로 끝난다. 하지만 어제 당선인의 ‘감사합니다’에는 의례(儀禮) 이상의 항심(恒心)이 담겨 있기를 바란다. 길고 험한 난관을 자력(自力)으로 뚫고 대선 승리를 쟁취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숱한 고비마다 국민이 덮어 주고 감싸 주지 않았다면 어제 그 자리가 없었을지 모른다. 앞으로 5년간 때론 민심이 모진 매를 들더라도, 그래서 한없이 섭섭하더라도 ‘감사하며 섬기겠다던 초심’을 잃지 않아야 할 것이다.

현직 대통령도 5년 전 당선 직후엔 여유를 보였다. 국민에게 감사할 줄도 알았다. “국민이 대통령입니다”라는 최고의 헌사(獻辭)까지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임기 초반 언젠가 “나에 대해서는 대통령인 내가 평가할 것이다”라고 말해버렸다. 민심을 하찮게 여기는 오만(傲慢)이 고개를 들면서 민심도 그에게서 멀어져 갔다.

당선인은 어제 “정책을 이해(利害) 당사자와 전문가, 국민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추진해 나가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런 다짐을 지켜낸다면 ‘국민의 정부’라 외치지 않아도 국민의 정부요, ‘참여정부’라 자칭하지 않아도 (국민) 참여정부가 된다. 반대자들을 4000번 설득했다는 청계천 사업처럼 완강한 반대를 지지로 바꿔 내야 할 일이 실제로 적지 않을 것이다. 국민에 대한 설득 능력과 노력 없이는 실용적 리더십이 성공하기 어렵다.

지난 5년간의 노무현 대통령은 독선(獨善)도 문제였지만, 땀보다 수사(修辭)로써 나라를 너무 쉽게 주무르려 한 것부터가 잘못이었지 싶다. 요컨대 일보다 말이 앞섰다. 그러다 보니 추상명사가 자주 필요했는지 모르겠다. 노 대통령은 그제 청와대에서 노사모 회원 300여 명을 만나서도 “노무현의 역사보다 노사모의 역사가 더욱 중요하다”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진정한 시민의 역할이 중요하다” 같은 구름 잡는 말을 했다.

해야’를 ‘했다’로 바꾸는 게 리더십

‘실용주의 개혁으로 프랑스를 변화시키고 있는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 등장 이후 프랑스 정계에서 추상명사가 퇴조하고 있다.’ 영국 시사주간 이코노미스트가 한 달 전 이렇게 보도했다.

어제 당선인의 회견에 추상명사가 적고 동사가 많았던 것은 다행이다. 이것부터가 이념 과잉의 좌파정권을 교체한 실익(實益) 같기도 하다.

하지만 당연한 ‘have to do(해야 한다)’가 많다고 해서 국민 삶의 질이 당장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did(했다)’가 필요하다. 현 정부는 ‘did’를 창출하는 데 무능했다.

당선인은 “변화는 정부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말이 ‘정부부터 시작했고 성공했다’로 바뀌어야 진정한 긍정적 변화다. 당선인은 “민간이 더 잘할 수 있는 일은 민간에게 돌려주고…, 일자리 창출과 성장잠재력 확충을 위해서도 이번만은 규제 개혁이 구호가 아니라 실천이 되게 해야 한다”고도 했다. 이 또한 설득과 결단을 통해 과거완료형으로 만들어야 한다.

기자회견문 내용대로 ‘국민에게 변화를 요구하기 전에 공직사회가 먼저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 주도록’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은 당선인 몫이다. 그러자면 가까운 데서부터 헌신과 희생이 불가피하다.

물론 국민도 찍어 준 것으로 할 일을 다했다는 생각에서 정부에 모든 것을 미루고 요구만 하는 태도로는 선진화 시대와 세계일류국가를 앞당길 수 없다. 대다수 국민이 정부에 지나친 기대만 갖는다면 경제와 민생의 정부 주도(主導)가 심해지고, 민간 활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국민 각계와 개개인이 법치(法治)와 시장원리를 능동적으로 실현하고, 정부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실제로 하지 않도록 민의(民意)를 모아야 한다. 국민과 정부의 손발이 맞아야 한다.


"50분간 TV를 시청하기가 우선 편했다. 약간 느린 저음에 실려 나오는 말들은 쉬웠다. 표현에 꼬인 구석이 없고 표정에 여유가 있었다." 

아~~ 정말 감동 먹었습니다.
대통령이든 누구든 기자회견을 하고 난 뒤 이런 식으로 목소리와 표정을 가지고 칼럼에서 평가한 것은 정말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칼럼계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나 할까요?

배인준 주간은 지난 3월 10일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친노인사 척결론'을 들고나오기도 전에 <노무현 食客들의 농성>이라는 칼럼을 씁니다. 막강한 영향력도 선보인 것이지요.

여기서 배 주간은, "정권교체의 본질은 인적 교체다. 누가 정권을 잡든 가장 중요한 첫 6개월을 인적 교체 문제로 시름하다가 탈진한다면 국정 성공을 기약하기 어렵다. 전임(前任) 대통령이 임기 말에 기관장과 산하단체장 자리에 코드 인물들을 앉혀놓고 후임(後任) 대통령 골탕 먹이는 행태가 5년 뒤에는 반복되지 않도록 지금부터라도 제도적 보완을 해야 한다. 그 이전에 ‘정연주 식 버티기’가 국민 사이에서 통해서는 안 된다. 정치적 식객(食客)들은 한 정권이 끝나면 곧장 자리를 털고 사라질 줄 알아야 식객 자격이나마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렇게 그 이름을 혁혁하게 드러내신 배 주간께서 마침내, 3월 25일 <李대통령에게 ‘쓰지만 좋은 약’>이라는 칼럼을 선보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미지를 클릭하면 칼럼 전문을 볼 수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인사 파동을 두고 "이 대통령 첫 인사(人事)의 부분 실패"라고 과감하게 이야기합니다. '부분실패'라고!
그리고,
"내가 보기에 이 정부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 잘 들어선 정부다. 내정 및 외교 문제에 상대적으로 안정감 있게 대처하고 있고, 무엇보다도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법치’를 지키려는 자세가 분명하다. 이에 따라 대한민국 정부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인(信認)도 현저히 높아지고 있다. 전(前) 정부가 보여준 것과 같은 국정운영의 아슬아슬함은 많이 줄었다. 그럼에도 국민은 정부가 큰 흐름에서 잘하는 것보다 작은 잘못을 저지르는 것에 훨씬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천둥벌거숭이 같던 노(盧)정권의 좌충우돌에 지쳐 정권을 교체했지만 지난날의 고통은 어느덧 잊고, 새 정권의 허물을 확대해서 본다."
고 합니다.

이 칼럼에 대한 자세한 평가는 민언련 논평을 한 번 참고하시구요.

자, 어떻습니까?
김대중 주필과 류근일 주필을 이어갈 만한 자질이 충분히 보입니까?
민언련에서는 아예 동아일보 정치부장을 지냈던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을 따라 청와대로 가는 게 어떻겠느냐고 했는데, 그 또한 나쁘지 않을 것 같구요.

배인주 동아일보 논설주간.
앞으로 5년 동안 과연 어떤 글을 쓸지, 과연 동아일보에서 글만 쓸지 뭘할지,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주안~놔 주간의 은밀한 칼럼' 앞으로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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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5일은 조선일보가 스스로 ‘창간기념일’이라고 ‘기념’하는 날이다. 올해로 조선일보는 창간 88주년을 맞았다고 한다. 조선일보는 3월 5일자 신문을 100페이지로 발행하고 본지에서만 10개 지면을 털어 ‘창간 기념’ 기사를 쏟아냈다. 그 가운데 특히 25면 전체에 실린 <건국 60년… 역사의 현장마다 조선일보가 있었다>는 조선일보의 과거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은 도저히 평상심을 유지한 채로는 읽을 수 없을 정도로 황당무계한 기사였으며, 역사 앞에 반성할 줄 모르는 조선일보의 뻔뻔스러움을 그대로 드러낸 기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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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88주년’임에도 “건국 60주년, 1948년부터 2008년까지 대한민국의 현대사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자유와 평등의 원칙을 정착시켜 나간 험난한 피와 땀과 눈물의 여정이었다”며 건국 이후 역사를 나열했지만, 그 속에 그 이전 시기에 보여 준 조선일보의 친일 역사는 쏙 빼버렸다.

‘5·16 군사쿠데타’가 일어나던 때 조선일보의 기사를 두고 “군부의 검열에도 ‘쿠데타’ 용어 사용”이라는 제목을 달았다고 강조했다. 조선은 “1면 제목과 사설에서 헌정 중단 사태를 빚은 군부의 불법 행동을 의미하는 ‘쿠데타’라는 용어를 쓴 것”은 “독자들로 하여금 행간에 숨은 뜻을 읽게 하려는 노력이었다”고 포장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조선일보의 이런 변명인지 착각인지 모를 주장은 자기 존재의 부정에 불과하다. 실제 조선일보는 불과 한 달여 전 현직 정치부 차장이 쓴 칼럼(1월 30일자 ‘김창균 칼럼’ <08학번에 들려주는 80학번의 추억>)에서조차 “5·16 군사혁명 세력이 그 시대의 유행이었던 사회주의 자립노선 대신 수출 주도노선에 올라탄 것” 운운하는 등 21세기가 된 지금까지도 ‘5·16’을 ‘쿠데타’가 아닌 ‘혁명’으로 부르는 조선일보 아닌가.

‘유신’이 선포된 1972년 기사를 소개한 대목도 어처구니없다. 조선은 당시 자사 보도에 대해 “‘유신’에 대한 진의 파악이 어려웠던 가운데 이 조치를 지지하는 기사와 광고만이 지면에 살아남았다”며 ‘유신’을 찬양한 기사가 나온 이유를 유신정권의 ‘검열’ 탓으로 돌렸다. 유신이 선포된 바로 다음 날인 1972년 10월 18일 사설 <평화통일을 위한 신체제>에서 “앞으로의 보다 보람되고 영광스러운 삶을 얻기 위하여 진정 알맞은 조치임을 기쁘게 생각”한다며 “가장 적절한 시기에 가장 알맞은 조치”라고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 자발적·적극적으로 유신을 합리화시켜준 ‘군부독재 부역신문’이 과거에 대한 반성은 전혀 하지 않고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으로 일관한 것이다.

이밖에도 조선일보는 87년 ‘6월 항쟁’과 관련해 당시(6월 12일) 기사 제목에 “‘개헌 논의 재개하라’는 제목을 달았다”며 마치 자신들이 시민들의 ‘호헌철폐’에 동참한 것처럼 억지를 부리고 있다. 또한 IMF 국가부도 이틀 전까지 “외환위기 아니다”며 앞장서 위기 상황을 축소 은폐했으면서도 “지면을 통해 국민들이 용기를 되찾을 수 있도록 노력했다”고 왜곡해 자평하기도 했다.  ‘이회창 대통령 만들기’를 했다고 비판받았던 97년 당시 대선보도에 대해서는 “후보들의 정책과 국가관을 국민에게 소상히 알리려 노력했다”고 강변하기도 했다.

이만큼의 왜곡과 지난 역사에 대한 호도만으로도 웬만한 사람들은 모두 분노를 금하기 힘들 지경인데, ‘5·18 광주항쟁’에 대한 표현에 와서는 자기 부정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조선일보는 ‘창간 88주년 기념’ 기사에서 ‘5·18 광주항쟁’ 당시 자사의 보도를 단 201자로 정리했는데, 이 짧은 기사 안에 조선일보의 극악무도한 철면피스러운 모습이 다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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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우선 80년 ‘5·18 광주항쟁’ 당시 자신들의 기사가 “통제 속에도 상황 전하려 애써”본 것이라고 표현했다. 기사는 당시 “통제로 인해 기사가 나올 수 없었던 21일자에도 ‘신현확 내각 일괄 사표’ 기사에 ‘최근 소요사태 인책’이란 부제를 달아 간접적으로 광주의 비극을 전하려 애썼”다고 주장했다. 또한 “31일자에는 ‘광주 시민 전체를 폭도로 몰지 말라’는 현지 반응을 실었다”며 마치 당시 조선이 광주 시민의 입장을 대변한 것처럼 평가하기까지 했다.

어떻게 ‘언론’의 탈을 쓰고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지 경악과 분노를 금할 수 없다. 광주항쟁의 진실과 그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노력해왔고, 신군부세력에 빌붙어 광주시민 학살을 외면했던 언론들을 고발해왔건만 적어도 조선일보에게는 깨알만큼의 영향도 미치지 못했단 말인가.

조선일보는 주필을 지낸 김대중 기자가 쓴 1980년 5월 25일자 <바리케이드 너머 텅빈 거리엔 불안감만/「무정부 상태 광주」1주>에서 “쓰러진 전주, 각목, 벽돌 등으로 쳐진 바리케이드 뒤에는 총을 든 난동자들이 서성거리고 있는 것이 멀리서 보였다”며 광주시민을 ‘난동자’로 표현하는가하면, 같은 날 사설에서는 “(남파 간첩들이) 민심을 흉흉케 함으로써 사태를 격화시켰으리라는 것도 십분 짐작이 가기도 한다”며 “피 흘림을 보고, 불길이 솟고 군중의 격앙된 심리상태에서 이성을 잃게 되면 냉철한 판단력이 요구되는 분별력이 없는 법이다”고 주장해 광주항쟁을 이성을 잃은 사람들의 분별없는 난동으로 표현하기까지 했다.

또 5월 28일 사설에서는 “30년 전 6·25의 국가적 전란 때를 빼고는 가장 난삽했던 사태에 직면한 비상계엄군으로서 군이 자제에 자제를 거듭했던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며 “신중을 거듭했던 군의 노고를 우리는 잊지 않는다”고 학살자들을 두둔하고 미화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노골적이고 낯 뜨거운 ‘전두환 찬양’에 여념이 없었던 조선일보가 “간접적으로 광주의 비극을 전하려 애썼다”고 ‘자평’하고 있으니 도대체 이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오늘 조선일보의 ‘창간특집기사’들을 보며 절망감을 느끼는 한편, 아직 해야 할 일이 여전히 많음을 다시 한 번 절감하게 되었다. 조선일보가 아무리 추악한 자신의 과거를 감추고 싶어 하더라도  반드시 그것을 세상 앞에 드러내고 마침내 역사의 심판을 받도록 최선을 다해 싸워야겠다. 조선일보가 변화하지 않는다면 ‘창간 100주년’이 되더라도, 200주년, 1000주년이 되더라도, 싸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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